학부생 시절, HCI와 UI/UX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본 적이 있다. 한창 전공공부에 대한 회의와 뭔가 다른것에 목말라 있던 때였고 무언가 만들어 내고 싶었던 때였다. 단순히 컴퓨터 공학 지식과 프로그래밍 문법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무형의 아이디어를 실체화 하여 세상에 적극적으로 내놓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앞서던 시기였고, 디자인학과 복수전공을 고민해보던 때 였을 것이다.
이제와서 깨달은 것이지만, 결국 그러한 아이디어의 실체화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던 지식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었고 그러한 사실을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다면...학교 성적부터 시작하여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나... 당시에는 깨우치지 못했던 진리였거니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전히, 학교는 본질적으로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긴 하나 가르침에 앞서 필요성을 먼저 느끼도록 해주었다면 나와 같이 전공공부에 대해 회의를 느껴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또한 있다.
아무튼 그때 당시 나는 HCI라는 학문과 UI/UX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었고, HCI (Human - Computer Interaction)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UI와 UX는 무엇인지, 그 과정에서 프로그래머가 맡아야 할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본 시간을 가졌고 내가 내린 결론은 기술은 결국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낸 것이고, 그"기술" 이라는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프로그래머로서, 우리는 흔히 말하는 공돌이, 이과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본능이 있긴 하지만 결국 그 끝에 궁극적으로 이뤄내고자 하는 것은 "사람을 위한 기술의 실현"이기에 인문학의 영역으로 향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내가 당시 프로그래머란 무엇이고 어떠한 역할을 맡아야 하는가에 대한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기술의 구현으로 인문학을 실체화 하는 직업"
Krafton Jungle 1기 과정을 마치고, 취업에 앞서서 여러 회사들의 JD와 지향점을 찾아보면서 다시금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은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간을 가졌고 그 과정중 많은 도움이 되었던 위대한 프로그래머들의 인터뷰 영상들과 그 내용을 추려 소개해보려고 한다.
John Carmack : 무엇이 좋은 개발자를 만드는가
James Gosling : 열심히 일하는 것의 가치 / Risk Taking / 개발자의 윤리 의식
Q. Given that you are once again, one of the greatest programmer ever, what do you think makes a good programmer?
특정 아키텍처, 기술, 코드 시퀀스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은 개인적으로 도파민 넘치는 즐거운 일이겠지만 그보다 상위의 중요한 것은 가치 있는 것을 빌드 하는 것이다.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행동들이야말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노력들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게 더 멋진 가치를 제공하는 것 말이다. 당신의 제품 덕분에 사람들의 삶이 개선되고 그 과정중에 해당 제품을 경제적으로 생산했다면 정말 멋진 일 일것이다.
워라밸에 대하여(50:52)
Q. Well, let me ask you about this, then. The mythical "Work life balance". For engineer, its seems like thats one of the professions for programmer where working hard does lead to greater productivity, but it also raise the question of personal realationships all that kinda stuff, family and... How are you able to find "Work life balance"? Is there advice you can give, maybe even outside of yourself, have you been able to arrive at any wisdom of this part in your years of life?
"일과 삶의 균형 (워라밸)" vs "일생의 업" 이라고 한다면, 적은 수의 숫자이지만 본인의 일에 몰두하고 집착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집착에 가까운 몰입이 사실 진짜 일을 해내곤 한다.
James Gosling : 열심히 일하는 것의 가치 / Risk Taking / 개발자의 윤리 의식
열심히 일하는 것의 가치(56:14)
사람들은 "힘들게 일하지" 말고 "똑똑하게 일하라"고 하는데 ("Work smarter, not harder"),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렇게 하다간 망하기 마련이지.
Risk Taking (1:48:37)
리스크를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살다가 멍청한 일 한번쯤 해봐도 된다.
개발자의 윤리의식(1:49:08)
삶의 윤리적인 선택에 대해서 생각하곤 한다. 개인적으로 공상과학의 팬인데, 내가 내리는 기술적인 선택들이 과연 "블레이드 러너"를 만드는지 "스타트렉"을 만드는지 우리가 어떠한 미래를 만들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George Hotz : 코딩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
-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갖는 것, 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배우는 것
코딩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2:46:14)
Q. Do you have a noob friendly advice on how to get into programming?
"프로그래밍을 배우자" 영상으로는 절대 프로그래밍을 배울 수 없다. 내 생각에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유일한 방법은 - 내가 아는 프로그래밍 잘하는 사람은, 다들 "다들" 이렇게 배웠다.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이걸 어떻게 하지..컴퓨터가 해주면 좋을텐데…하다가 계속 노력을 하면서 배우는것.
Travis Oliphant : 좋은 프로그래머가 갖추어야 할 요소
좋은 프로그래머가 갖추어야 할 요소(2:47:20)
Q.What are some from programmer perspective, what makes a good programmer? What makes a productive programmer? Is there advice you can give to be a great programmer?
그중 첫번째는 호기심이다. 호기심이 없는 프로그래머는 글쎄… 지루하지. 일에 관심도 없고, 잘 하지도 못할 것이고.
두번째로는, 모든걸 혼자 다 한번에 하려고 하지 말아라. 사람으로서 각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코드 쓰는 것? 너무 두려워 하진 말아라. 혼자서 모두 다 써야 하는건 아니라고. 누구도 그렇게 안한다. 복사-붙여넣기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는 하고 해야겠지. 아 이 코드는 이런걸 하는구나. 할 수 있는 만큼 이해는 해야겠지. 여기서 중요하게 작용 하는것이 호기심이다. 그냥 대충 눈감고 복사-붙여넣기 하는건 좋은 자세는 아니다.
About hiring (3:00:55)
사람을 볼 때, "배우고자 하는 의지" 가 있는지를 본다. 우리가 항상 하는 일은 결국 "배우는 것"이다. 본인이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한다면 결국 문제가 생길 것이다.
나의 이공계로의 첫발은 초등학교 때 부터였다. 4월 과학의 달이면 매년 고무동력기 경진대회와, 라디오 만들기, 과학상자 등으로 만들어 내는 즐거움과 수상의 기쁨을 나에게 알려주었던 그 시절이 앞으로 내가 이공계로서의 길을 걸어야 겠다고 나 스스로를 납득시켰던 최초의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남들보다 조금 일찍 가지게 되었던 학업에 대한 관심 덕에 서울시 교육청에서 진행하는 영재교육 프로그램에서 소위 말하는 본격적인 엘리트 코스를 경험하게 되었고, 이러한 경험은 자연스럽게 중학교때에도 이어져 서울대 영재교육원을 다니며 나와 같은 관심을 가지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 친구들과 함께 열정을 공유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불씨를 일찍 당겼던 탓일까, 아니면 그 모든 열정의 끝에는 결국 합격과 불합격이라는 평가의 관문이 있었기 때문일까, 나의 소위 "엘리트 코스" 에서의 여정은 중학교에서 막을 내렸다. 흥미가 가는 분야에만 집중하는 성격 탓이기도 하고 학교의 친구들과는 다른 공부를 한다는 희열에 취해 과학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필수적이었던 학교 내신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였던 탓에 화학 올림피아드 수상경력과, 서울대학교 과학 영재원 수료라는 스펙을 가지고도 내신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어처구니 없게도 당연히 진학하리라고 생각했던 과학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하였다.
일반계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나서 인생의 내리막은 시작되었다. 과학고등학교 진학 실패 이후,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나의 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부모님과의 갈등은 더욱이 커져만 갔고, 나 스스로도 과거의 실패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고 그저 이전까지 공부했던 관성으로만 고등학교 시절을 지내게 되었다. 남들보다 조금 나은 머리와 중학교 때 먼저 달려두었던 선행학습 덕에 공부를 하지 않고도 고등학교 2학년 까지는 어느정도 성적을 유지 할 수 있었지만, 이과수학과 수학능력시험에서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성실성과 탄탄한 기초를 간과했던 나는 그렇게 대학 진학에도 실패하고 재수, 삼수를 거듭하여 여러 현실조건들과 경제적 사정들과 타협한 끝에 국립대인 충북대학교에 소프트웨어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어렸을때부터 IT 기기와 컴퓨터를 좋아하던 나에게 있어서 소프트웨어학과로의 진학은 너무나도 당연한 선택이었고, 삼수끝에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공부를 할 수 있을거라고 굳게 믿고 대학생활의 첫 발을 띠었다. 그러나, 국립대 특유의 경직된 커리큘럼과, 학교에 대한 외부 지원을 위해 학생들에게 강요하던 공학인증은 전공과 교양의 선택을 극단적으로 제한하였고, 학과에서 지정한 교과목만 정해진 순서에 맞추어 들어야 정상적인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나에게, 본인 연구 외에 교수법에 전혀 관심이 없는 교수들의 지식 늘어놓기는 지루하기에 짝이 없었고 내가 생각했던 컴퓨터공학과 화이트 보드에 교수들이 늘어놓고 있는 저 알 수 없는 내용들이 과연 무슨 접접이 있을까 의구심만 들게 만들었고, 자연히 학과 공부에 대한 열정도 차갑게 식었다.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지만, 전공시간에 배웠던 그 교수들이 늘어놓았던 지식들이 꼭 아무린 쓸모없는 지식은 아니었으며, 매우 학문적이고, 현업과는 동떨어진 지식들이나 결국 그 지식들이 지금의 화려한 IT 시대를 만들어낸 토대가 되는 지식들이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처참한 학점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의 일이었다. 내가 학교에서 유일하게 관심을 가지고 흥미와 열정을 느끼며 참여했던 모든 과목들은 팀프로젝트로 진행되었던 "무언가 만들어 내는" 결과물을 도출하는 과목들이었고 그럴때마다 팀장으로서 기획과 팀협업을 리드했던 경험은 학과 공부에 거의 모든 흥미를 잃었던 내가 마지막 까지 학업을 아예 놓지 않았던 이유 이기도 했으며, 졸업 할 때 쯔음에야 겨우 신설된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같은 과목들 또한 다시금 컴퓨터 과학에 대한 나의 흥미를 자극해주기 충분했었고 F로 점철된 교양, 전공기초 과목들의 학점들을 매꾸느라 한학기에 24학점씩 듣고, 생활비를 위해 토,일 하루 12시간씩 카페 알바를 하며 힘겹게 졸업장을 따던 나를 지탱해주는 과목들이었다.
그렇게 2020년 8월 에서야 나는 학과에서 강요하던 공학인증 조건을 충족하고 겨우 졸업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관련 업종 취업을 위해 필수적인 코딩테스트를 위한 두려움이 컸다. 머리속에서 로직은 그려지지만, 막상 그걸 코드로 옮기려고 하면 문법조차 막막해서 손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초적인 전공공부를 소솔히 한 탓이다. 또한 여기에 더불어 학교 다닐때 아버지께서 간암 판정을 받으셨었는데 병환이 갈수록 심해져 간병을 위해 우리 가족들 모두의 역량이 소모되고 있었다. 해가 갈수록 아빠의 병세는 악화되어 갔고 간기능 악화로 인해 몸의 독소를 해독하지 못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간성 혼수와 응급실 행은 나를 포함해 가족 모두의 마음을 갉아 먹고 있었다.
이 시절 나는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분노와 슬픔의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해메며 눈물을 흘렸고, 나이가 차며 자꾸만 조급해지는 취업에 대한 현실의 제약과, 가족의 병환, 감정의 소모 속에서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우울증이 무서운 점은 그 상황을 해쳐 나갈 일말의 의지 조차 꺾여버린채로 무기력의 심연 속으로 가라 앉으며 그 사실을 온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울의 양성 피드백에 갇혀버린다는 점이다. 온종일 방안에서 스스로를 가둔채로 지내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될거 같아 2021년 말, "살아 남기 위해" 정신과를 찾아가서 상담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내던 중 2022년 2월, 여느때와 다름 없이 간성 혼수로 인해 응급실에 실려간 아버지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지난 7년의 병간호 동안 항상 응급실을 왔다 갔다 했지만, 이번에는 간성 혼수가 심하게 진행된데다 신장능력 또한 저하되었고, 그로 인해 심장또한 망가지고 있었다. 2022년 2월 20일 가족들 모두가 중환자실에 모인채로 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내쉬며 돌아가셨다. 아직도 아버지의 마지막은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사람이 죽을때 마지막 숨이 그렇게 길줄은 몰랐다. 마치 힘겹게 삶에 대한 미련을 붙잡고 길게 내쉬는 한숨 같았다. 그날 삼성병원 8층 암병동 밖의 창문에는 올해 마지막 눈발이 새차게 날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엄마는 30년을 넘게 함께 해온 배우자의 상실로 인해 힘들어 하고 계셨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아버지의 죽음은 가족들 모두에게는 서로 더욱 돈독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한사람에게 전부 소진되었던 감정들이 비로소 서로를 위해 돌아갈 여유가 생긴 탓 이었으리라.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동생은 뚜벅 뚜벅 걷는 뚜벅이, 나는 한번에 힘차게 비상을 준비하는 새 라고 하셨다. 동생은 나와 다르게 꾸준히, 그리고 묵묵히 하나하나 자기 갈길을 걷는 성격이고, 나는 흥미가 있는 일에는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집중하여 결과를 내지만 그 외의 일에는 통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성격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마지막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삶에 대한 미련과 의지가 너무나도 강했던 탓에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의 안타까움을 더 했었다. 아마 아빠는 눈을 감는 그 순간에도 내가 비상할 그 순간을 지켜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셨을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식을 뒤로하고 49제를 지내며 가족들과 상실의 아픔을 추스리고 난뒤 비로소 나는 앞으로 나아갈 심적인 여유와 여력이 쌓이기 시작했다. 지난 2년간 생산적인 일이라고는 손에서 거의 놓았던터라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 할지, 뭐 부터 공부해야 할지 너무나도 막막했지만 일단 정보처리기사 국가자격증 부터 따기로 목표를 정하고 책을 사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내용은 이미 전공과정을 거치며 어느정도 기반 지식이 잡혀있던 상태였고 2022년 7월 24일, 시험출제가 바뀌고 나서 역대 최소 합격률을 자랑했던 정기 기사 2회 실기에 합격을 할 수 있었다.
정보처리기사 합격은 정말 오랫만에 느껴보는 성취였다. 무언가를 위해 도전할 의지조차 꺾여 있었던 수년간의 어둠 속에서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느꼈던 계기가 되어주었다.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았고 도전하지 않아 더더욱 자신감을 잃던 무한 루프를 탈출시켜 주는 브레이킹 포인트가 되어 주었다. 취업 정보를 위해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크래프톤 정글 모집에 대한 광고를 보았을 때도 그때 즈음 이었을 것이다. 원래 애드블럭등으로 대부분의 광고를 막아두고 있었기에 어디서 어떻게 볼수 있었는지조차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비전공자도 개발자로 거듭 날 수 있게 해준다는 크래프톤 정글은 지난 2년간의 공백과 현실적인 이유들로 이제는 거의 포기 하고 있었던 개발자에 대한 꿈을 다시금 지펴주는 계기가 되었다.
크래프톤 정글 지원서를 접수하고 입학시험을 위해 배부된 자료를 보고 공부하면서 다시금 마음속에서 새로운 도전으로 부터 오는 두근거림과 무언가 몰입하는데에서 오는 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입학시험 당일날 제시된 과제를 만들며 처음에 각종 Try/Catch 예상 항목을 고려해둔 채로 시작하며 각 메모를 독립적으로 식별하기 위해 자바스크립트 단에서 난수 생성을 해 각 인스턴스 항목별로 식별가능한 ID 를 부여하는 방법을 1차적으로 생각해두었지만 완벽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되어 욕심을 부리던 와중에 MongoDB 로 부터 웹으로 ObjectID를 받아와서 처리하는 과정에서 자료형이 호환이 안되는 문제에 부딪혔다. 때문에 모든 요구사항과 로직이 완성된 상태였지만 시간이 부족한 탓에, 각 메모의 개별 식별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제시하는 요구사항을 충족하지 못한채로 제출을 하게 되었다.
좌절감도 컷지만, 신기하게도 시작했던 과제를 마저 완성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합격 여부와 관계없이 해당 문제만 해결하면, 내가 만들었던 웹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작동 할 것이라는 확신 또한 있었고 그 끝을 보고 싶어서 제출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계속 프로그래밍을 하여 완성본을 만들어 냈다. (https://github.com/InFinity-dev/2022_KraftonJungle_Test) 해냈다는 보람도 있었지만, 좀더 빨리 해당 문제를 해결 하는 방법을 알아내서 완성본을 제출 했으면 좋았을거라는 아쉬움도 컷다. 사실 미완의 과제를 제출 했기에 당연히 불합격을 예상하고 있었으나, 2022년 9월 20일 크래프톤으로 부터 문자 한통을 받았다. 입학시험 합격을 축하하며 다음 전형인 인터뷰 일정에 대한 안내였다.
인터뷰 준비는 따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만 기술 면접에 대비해 입학 과제에 썼던 로직과 무엇때문에 미완으로 제출했었는지, 그래서 어떤 식으로 개선시켜 완성시켰는지 답변하기 위해 작성했던 코드에 대한 리팩토링과 코드 리뷰를 조금 진행했었고, 그 외 면접때 나왔던 질문에 대해서는 그냥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대로 답변했던 기억이 난다. 10월 4일 최종 합격 문자를 받고 나서야 초조한 마음이 가라앉았다. 사실 크래프톤 정글 입학에 실패한다면 다음 과정으로 무엇을 할 지 막막했던 상태였다. 30살이 넘은 나이와 관련학과를 졸업한지 2년이 지난 공백, 그리고 빈약한 전공기초지식으로 개발자의 꿈을 포기하고 공무원이나 다른 직종을 위해 준비해야 하나 하고 있던 와중 크래프톤 정글 합격 문자는 다시금 내가 개발자를 꿈 꿀 자격을 주는 티켓이었던 것 같다.
크래프톤 정글 입소 전날, 이제 들어가면 공부만 해야 된다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밤새 게임을 했다. 한창 하던 에이펙스 레전드라는 게임이 있는데 밤낮이 바뀐채로 생활하다 보니 북미에 사는 외국인들과 플레이 하며 친분을 쌓고 IGL(In Game Leader)역할을 맡아 배틀로얄 장르를 플레이 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던 와중이었다. 첫날이니 적당히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기숙사에서 짐풀고 일정이 마무리 될거라는 생각에 가서 자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크래프톤 정글에서의 첫날은 그야말로 "정글"에서의 첫날이었고, 첫날부터 Python Flask와 Jinja2 템플릿엔진, 그리고 DB 연동을 통해 기획한 웹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JSON Web Token(JWT)를 활용한 로그인 로직을 완성하기 위해 찾아보던중 JWT의 원리와 장점을 설명한 문서들을 찾아보고 Git에서 JWT를 적용한 프로젝트를 받아서 코드를 돌려보며 잠시동안 푹 빠져든탓에 첫날밤을 그렇게 새고, 두번째 밤은 마감시간에 쫓겨 기획한 개발 요구사항을 완성하기 위해 팀원들과 밤을 새며 내리 3일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피곤한 와중에도 머리속에는 온통 "왜 안되지? 어떻게 해야 작동하게 만들수 있는거지?" 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프로젝트 데드라인이 다가오면서 조급한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평가 요소"가 없기에 그 와중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온전히 팀 협업 경험과 몰입 경험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배려해준 크래프톤의 기획이었다고 생각한다.
3일에 걸친 첫 팀 협업 프로젝트 발표가 끝나고 반별로 회식을 하며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코치님들과도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단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전공자들 뿐만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살던 사람들이 한가지 목표를 위해 이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모두가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내며 0주차 첫 프로젝트 발표를 마쳤다는 점에서 알량한 전공자로서의 위기의식과 함께, 자신감 또한 얻었다.
지금 크래프톤 정글에 모인 모두는 각 개인의 역량과, 이제까지의 삶의 궤적은 각기 다를 지라도, 단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자기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에서 뭔가를 바꾸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으로 이 곳에 와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입학시험의 과제 완성 여부에 따라 당락을 결정하지 않고 모든 요소를 고려하여 크래프톤 정글 1기 지원자들을 뽑은 이유는 코딩 실력을 판단하는 시험이 아닌, 목표에 대한 열정과 삶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보고 뽑은 탓이 아닐까 싶다.
각 개인으로서 누구나 어제보다 내일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다만 그 의지의 불꽃의 시작은 처음에는 미약하기 나름이라,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인해 쉽게 사그라 들기도 하고, 또 어떨때는 누구보다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제약과 외부적인 요인으로 흔들려 꺼지기 십상이다.
크래프톤 정글에는 각 개인 한명한명의 가슴속에 모두가 그런 불꽃을 조심스럽게 피워낸 채로 이 자리에 모였다. 혼자만의 불꽃으로는 쉽게 사그라 들던 그 의지와 열정이 크래프톤 정글이라는 바람막이와 불쏘시게 안에서 옆에 있는 사람의 불꽃을 만나 더욱 화려하게 타 오를 것을 기대한다. 1 + 1 = 3이 됨을 보여줄수 있는 자리가 되리라고 믿는다. 서로의 열정이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하는 경쟁이 아닌 협력과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의 장을 크래프톤 정글이 제공하였다. 사회에서는 좀처럼 얻기 힘든 기회이다. 이런 기회를 준 크래프톤 정글에 나는 정말 감사하다. 크래프톤 정글에 입소하지 못하고 개발자로서의 꿈을 접었다면, 평생 가슴 한켠에는 이루지 못했던 꿈에 대한 미련과 후회가 남아있었지 싶다.
5개월간의 크래프톤 정글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의 역량이 어느정도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점은 그 5개월간의 과정을 수료하고 난뒤 가지고 나가게 되는 몰입경험과 같은 곳을 바라보는 팀원들과의 잊기 힘든 협력경험은 앞으로 그 어느 곳에서도 값지게 쓰일 배양토가 되어 좋은 개발자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임에는 분명하다.
나의 나이, 졸업후 공백기간 등을 고려해봤을때 현실적인 관점에서 크래프톤 정글은 나에게 있어 개발자로서의 진로를 갈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뭔가를 만들어 내는것에 희열을 느끼는 나로서는, 개발자는 쉽게 포기 할 수 없는 꿈이다. 앞으로의 여정이 기대됨과 먼 미래에 되돌아 봣을때 지금 이 순간, 이 자리가 나의 인생에 있어서 길이 남는 힘찬 첫 발자국으로 기억되길 새롭게 각오해본다.